Wonhyo
원효
원효(元曉)
일심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교설의 집착을 비판하고 화쟁으로 대립을 회통하는 독자적 불교 철학을 전개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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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록
- 『대승기신론소』·『금강삼매경론』·『십문화쟁론』 등 광범한 저술이 신라를 넘어 중국·일본 불교 연구와 주석 전통에 영향을 주었다.
- 귀족·교단 중심 불교를 넘어 노래와 쉬운 실천으로 일반 민중에게 불교를 전하려 했다는 장기 대중교화 전승을 남겼다.
- 한국 불교의 회통 전통과 철학사, 일반 교육·문화에서 7세기 지성의 대표 인물로 지속적으로 호출된다.
생애
617
신라 압량군 일대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.
7세기 중반
출가해 여러 경론을 독학·연구하고 의상 등과 교류했다.
650·661경
당 유학을 시도했으나 돌아와 국내에서 연구·교화를 이어갔다는 전승이 있다.
7세기 후반
황룡사에서 『금강삼매경』을 강론하고 관련 논서를 남겼다.
686-03-30
혈사에서 입적했다고 전한다.
1190
고려 명종대 분황사에 화쟁국사비가 세워져 후대 현창이 제도화되었다.
출처
2곳
- 원효(元曉)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
대목 10곳
- 화쟁국사비
- 저술 목록과 동아시아 영향
- 초기 수행
- 학문과 저술·화쟁
- 유학 시도
- 금강삼매경 강경과 저술
- 대중화운동과 교화
- 1190년 화쟁국사비와 후대 현창
- 입적일
- 출생지 전승
- 원효: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은 위대한 승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
대목 9곳
- 대표 저술
- 일심·화쟁 사상
- 입적
- 출가와 수학
- 후대 영향과 평가
- 불교 대중화와 무애행
- 두 차례 입당 시도와 깨달음 전승
- 출생과 가계
- 대표 저술과 사상

